수험수기: 문헌정보학과 18학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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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세내용
-
'우리들의 공부하는 시간'에서 제공해주신 학습수기입니다.
아이프리-동호회-우리들의 공부하는 시간 으로 접속 가능합니다.
수험생 분들께 전하는 편지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의 어느 맹학교를 졸업한 학생입니다. 먼저 고3이라는 압박감이 막중한 가운데서도 꿋꿋이 버텨내고 계실 수험생 분들께 무한한 존경과 심심한 위로를 전하고 싶습니다. 더구나 수능도 연기되어 부담은 더 클 거라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멘탈 관리에 대한 제 경험을 위주로 말씀드리려 합니다. 심적으로 지쳐있을 후배님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수험생활을 하며 정신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가을이었던 것 같아요. 2학기 개학과 동시에 수시 원서 접수 시즌이 다가오기 때문이죠. 1학기 때만 해도 조금은 막연하게 생각했던 ‘대학’이라는 것이, 몇 달 후에 내가 가게 될 곳이라니. 그때부터 실감이 나기 시작했어요. 일단 원하는 학교의 리스트를 쭉 적은 후 각 대학별 홈페이지를 둘러보았습니다. 다 보고 대학을 추려내는 과정에서 저는 장애인특별전형의 유무를 우선적으로 고려하였고, 집과의 거리가 가까운지를 두번째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그간의 모의고사 성적을 확인해 본 결과, 제 실력으로는 본 시험에서 최저등급을 맞출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서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이 없는 곳을 선호하였으며, 최종적으로 5개 대학에 원서를 넣을 수 있었어요.
자소서를 포함한 여러 가지 서류를 제출하고 9월 중순부터 본격적으로 면접 연습에 돌입했어요. 정말 감사하게도 모교 선생님께서 수업시간을 활용해 면접 지도를 도와 주셨어요. 면접장에 들어갈 때의 인사법부터 답변할 때의 톤이나 말투 등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태도를 가르쳐 주신 것은 물론, 예상질문에 대한 답을 작성하여 제출하면 그 중 두어개 정도를 랜덤으로 질문하시거나 자소서와 생기부 기반으로 질문하시는 등 마치 실제 면접과 비슷한 분위기에서 진행되었어요. 글로 쓸 때 질문에 대해 충분히 고민하며 썼기에 그것을 말로 잘 풀어내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선생님 앞에 서니 머리가 하얘지더군요. 결국 아무 말도 못하고 그대로 자리로 돌아갔던 첫날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네요.
그날의 경험을 발판삼아 매일 밤늦게까지 집에서 혼자 연습하거나, 동아리 시간에 선생님께 양해를 구하고 친구와 둘이 연습을 하는 등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리고 제 차례가 돌아왔을 때, 저는 첫날과 똑같은 실수를 하고 말았어요. 다음에도, 그 다음에도. 어떻게 된 게 연습할 때는 비교적 잘 나오던 말이, 익숙한 공간에 익숙한 선생님과 친구들 앞에서는 세상이라도 정지된 듯 굳어 버리는지 억울할 정도였습니다. 적당한 긴장감은 일의 능률을 높여 준다지만 과도한 긴장은 오히려 해가 될 뿐이었습니다. 저 하나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고 말주변도 없는 제 자신이 너무 한심해 보였고, 하루하루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진 못할망정 열심히 가르쳐 주시는 선생님을 답답하게 한 것 같아 죄송한 마음마저 들었어요. 그런데 아무리 면접이 중요하고 최저등급에 대한 압박이 없다 한들 수능 준비를 소홀히 할 수는 없었기에 부담은 두 배가 되었습니다. 그래도 정신력으로 잘 버텨내는 줄 알았는데 어느 순간 현타라 하는 것이 왔고 이대로 멈추고 싶다는 충동이 저를 지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뒤로 며칠동안은 어떤 것도 손에 잡히지 않아 멍하게 시간을 보냈던 것 같아요. 청승맞게 이러고 앉아있을 시간마저 사치라는 걸 잘 아는 사람이.
그사이에도 시간은 착실히 흘러 면접 당일이 되었습니다. 기분 탓인지 그날은 유난히도 추웠던 걸로 기억해요. 아쉽게도 대기실에 점자정보단말기(한소네)를 가지고 갈 수 없었으므로 밖에서 자소서를 빠르게 훑어본 후 들어가야 했어요. 들어서자마자 종이를 넘기는 듯한 소리가 들렸고 불안함은 더 커졌습니다. 그렇다고 규칙을 어길 수는 없으니 그동안 준비한 것을 믿으며 머릿속으로 몇 번의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마인드 컨트롤도 하던 중 제 이름이 호명되었습니다.
수십 번 마음을 가다듬었음에도 면접장에 들어가니 과도긴장하는 습관이 저를 또 찾아왔어요.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은 지 3초만에 “지원동기가 뭔가요?”라는 본격적인 질문부터 받아서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상황이 조금 달랐어요. 온몸이 바들바들 떨리고 호흡도 가빠져왔지만 그동안 준비한 만큼 말하고 나올 수 있었거든요. 긴장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긴장해서 할 말도 못하고 나오는 게 더 아깝지 않냐는 한 분의 말씀을 떠올리는 것은 꽤 효과가 있었어요. 혹독한 연습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에 그 말씀이 더욱 든든하게 느껴졌던 것 같아요. 연습을 실전처럼 지도해 주셨던 선생님과, 격려와 위로를 아끼지 않으셨던 선생님께 늦게나마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네요.
그로부터 며칠 뒤부터 원서를 넣은 나머지 대학들에서도 결과가 발표되기 시작했어요. 그러나 떨리는 손으로 수험번호를 조회할 때마다 실망스런 한 문장이 나타나더군요. 불합격하셨습니다. 같은 대학을 지원한 친구가 좋은 결과를 받는 걸 보고 이유 모를 질투심과 열등감이 올라왔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마음을 갖는 것만으로도 친구에게 미안했고 이런 생각이 미성숙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자책하는 시간도 많아졌습니다. 친구의 성공을 진심으로 축하해야 하는 걸 아는데 그 문장 하나 말하는 게 그렇게 힘들더라고요. 차라리 1학기 때가 나았습니다. 수능 공부에 매진하는 분위기였기 때문에 친구들 모두 열심히 한 만큼 성과를 이루었으면 하고 응원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그 마음이 변치 않기를 바랐는데 저보다 한 발 먼저 출발점에 서있는 친구들을 보니 부러움과 조급함이 앞섰어요.
제 마음도 모르고 잘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야속함을 느끼던 어느날. 교회에 갈 준비를 하는데 합격했다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좋은 꿈을 꾸셔서 혹시나 하며 확인했다 하시며. 에이 설마, 꿈일 뿐이겠지. 엄마가 거짓말을 하실 리가 없는데 그 말만은 믿기 어려웠어요.
‘설마’를 연발하며 수험번호를 입력했습니다. 합격, 두 글자가 저를 반겼어요. 연속 다섯 번을 조회해도 변하지 않는 결과를 보고나서야 비로소 현실감이 느껴졌습니다. 가장 많은 눈물을 흘리며 준비했던 첫 면접, 하루에도 수십 번 흔들리던 멘탈을 부여잡고 있던 시간들이 모두 보상받는 기분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어요. 하나님을 그렇게 열정적으로 불러본 것도 그때가 처음이었구요.
남들보다 느린 것도 두려웠지만 그보다도 더 저를 두렵게 했던 건 꾸준히 가던 길에서 멈추는 거였어요. 조금 느리게 걸어도 괜찮으니 끝까지 가서 후배님들께 준비돼 있을 선물을 보고 마음껏 기뻐할 날이 오기를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그리고 입시를 준비하다 마음이 무너지는 순간이 찾아오는 건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 생각해요. 그러니 멘탈이 약하다고 스스로를 너무 몰아세우지는 마셨으면 좋겠어요. 주위를 둘러보면 여러분이 입시와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도록 조용히 응원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거에요.
길고 부족한 글을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수험생 여러분들, 멈추지만 말아 주세요. 파이팅!! 끝으로 제가 쓰러지려 할 때 정신적 지주가 되어 주신 모든 분들께도 정말 감사드립니다.
- 등록일
- 2022-1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