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험수기: 음악학부(피아노 전공) 19학번

정보 종류
교과학습
연락처
정보없음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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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내용
'우리들의 공부하는 시간'에서 제공해주신 학습수기입니다.
아이프리-동호회-우리들의 공부하는 시간 으로 접속 가능합니다.


나는 어렸을때부터 피아노에 관심이 많았고, 초등학교 때부터 꾸준히 레슨을 받았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피아노과에 진학하고 싶다는 꿈이 생겼고, 감사하게도 부모님과 선생님들도 피아노를 전공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말씀해주셨다.
하지만 수시 원서 접수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우선 특수교육 대상자 특별 정형이 있는 대학교가 손에 꼽힐 만큼 적었다. 게다가 특별전형이 있는 대학들 마저도 장애학생을 뽑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많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일반전형에 지원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서울에 있는 거의 모든 대학의 입시 요강을 살펴 보았다. 대학에서 요구하는실기곡이 내가 준비해 놓은 곡과 일치하는 대학을 골라서 접수를 하려고 했는데 이번에는 실기 날짜가 문제였다. 거의 모든 대학이 같은 날 실기 고사가 예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결국 날짜가 겹치면 안 되었기 때문에 3개의 대학에만 원서를 쓸 수 있었다. 원서가 접수되고 수험표가 나오자마자 입학처에 전화를 했다. 시각장애가 있기 때문에 실기 고사장에서 피아노까지 안내를 부탁드린다는 말을 하고 알겠다는 대답을 들은 후 전화를 끊었다.
실기시험 날이 밝았다. 나는 세 대학 모두 1조에 배정되었다. 원서 접수를 제일 먼저 했기 때문에 접수한 순서대로 팀을 짜는 것 같았다. 원서 쓰는 날짜를 잘 조정해서 다른 학교에 원서를 더 넣을걸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아쉬운 생각을 뒤로 하고 오전 7시 40분 쯤 학교로 출발했다. 8시 10분 쯤 학교에 도착했고 실기 고사장인 음대 건물에 도착한 시간은 8시 20분이었다. 하지만 입실 시간이 8시 30분이었고, 그 전에는 건물에 들어갈 수 없었다. 10월이었지만 아침이라 그런지 날씨가 너무 추웠고, 긴장감까지 더해져서 기다리는 10분이 지옥같았다. 고사장 앞에는 악보를 확인하거나 핫팩을 흔드는 학생은 물론, 청심환을 먹는 학생도 있었다. 나도 청심환을 준비할 까 고민했었지만 교수님께서 곡의 템포가 느려진다고 먹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하셔서 준비해 가지 않았다.
실기시험장에는 학부모가 동행할 수 없기 때문에 도우미 학생이 나를 도와주었다. 대기실에서 시험 순서를 추첨하고 실기 고사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chopin etude 와 자유곡을 각각 다른 장소에서 연주하고, 어떤 곡이든 정해진 시간(약 2분) 동안 연주하다가 종소리가 들리면 연주를 멈춰야 했다.
설명을 다 듣고 바로 시험이 시작되었다. 우선 학교 연습실에서 2분 정도 손을 풀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 제일 어려워 하는 부분과 곡의 도입부를 조금 연주해 보고 바로 고사장으로 이동했다. 앞 순서인 응시생들의 연주를 들을 수 있었다. 음원을 듣는 것처럼 정말 매끄러운 연주였다. 방금 전까지는 별로 긴장되지 않았는데 연주를 듣는 순간부터 긴장감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결국 내 차례가 오고 말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피아노 앞에 앉자 마자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2분 안에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연주를 해야 했기 때문에 다른 생각을 할 틈이 없었다. 시작하는 순간이 제일 떨렸지만 바로 곡에 집중할 수 있었다. 2분은 생각보다 빨리 지나갔다. etude 시험이 끝난 후 바로 자유곡 시험을 보러 갔다. 자유곡으로는 베토벤 소나타를 준비했는데 에튀드를 연주한 뒤라 긴장이 되지 않았다. 덕분에 시작하는 순간에도 떨지 않고 음악에 온전히 집중하며 연주할 수 있었다. 이렇게 시험은 4분만에 너무 허무하게 끝나 버렸다.
실기 시험은 준비하면서 합격 기준이 항상 궁금했다. 수능처럼 객관적인 기준이 있는 것도 아니고, 체점 기간도 없이 4분만에 당락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 4분동안 무엇을 평가하고 합격 여부를 결정하는 것일까? 대학교에서 1년동안 정식으로 피아노를 배우고, 다른 사람들의 연주를 많이 듣다 보니 어렴풋이 그 기준을 짐작할 수 있었다. 얼마나 손이 잘 돌아가는지, 테크닉이 얼마나 완벽한지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음악에 완전히 몰입하는 것이 중요하고, 또 그런 사람을 학교에서 가장 원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끝으로 수기를 마치며 고 3 친구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듯, 곡의 테크닉을 익히고 음정, 박자를 지키는 것이 너무나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곡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해석하느냐에 있다. 연습을 많이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른 연주자들의 연주를 듣고, 악보를 보면서 프레이즈 하나 하나에 이야기를 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한 음도, 의미없는 음은 없다. 음악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전할 수 있는 훌륭한 연주자가 되어 사회에서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등록일
2022-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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